첫 번째 씨앗
사랑하는 문장과 이미지 하나씩을 알려주세요.
삼가 직언하는데 글을 쓰시려거든 글을 믿으세요.
_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팬픽 백일장에 남긴 피드백 댓글 중
punk and a monk, Fall out boy / Save the Rock and Roll 앨범커버
세 번째 씨앗
가장 최근에 관찰하거나 포착한 ‘일상’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부끄럽지만 일상에 대해 그다지 의식하며 살지 않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생각해 보았는데요, 낙엽이 생각났습니다. 기숙사 앞에 새로 덮은 아스팔트 위에 노란 은행잎이 마구 떨어져 있었는데, 도로의 노란 안내선과 색이 똑같았어요. 마치 의태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노란 페인트의 색은 영원할 텐데 과연 낙엽의 색은 바래고 닳아 없어질 때가 되면 그때는 대비가 생길까? 아니면, 아스팔트도 갉혀나가고 나면 결국 똑같은 걸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던데요. 희선님이 보신 오리가 무슨 색이었을지 궁금해요. 오리 부리의 노란색은 은행잎의 색과는 다르겠죠?
다섯 번째 씨앗
창작에 도움 혹은 영감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무엇, 혹은 누구인가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숙면입니다. 저의 경우는 영감보다는 절대적인 도움이기는 한데요, 잠에서 에너지와 기력과 기분과 용기를 얻게 돼요. 요즘 저의 고민은 '잠보다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인데요, 멋지고 놀라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꾸 반문하게 됩니다. 저 사람한테는 그 일이 잠보다 즐거운 거겠지? 하고...
일곱 번째 씨앗
앞으로 계속되어 갈 ‘일상’에 어떤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돌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매년, 매 달, 매 학기 친구들에게 말하게 되는데요, 세상이 점점 당연하고 놀라울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오만이겠지만 모든 일에 당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매년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며칠 전에는 저녁을 데워 오다가 그대로 발을 삐끗해서 발매트 위에 전부 엎어 버렸는데, 전혀 화도 나지 않고 속상하지도 않더라구요. 묵묵히 치우면서 스스로가 좀 뿌듯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묵묵하고 담백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가지고 싶어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기도 한데, 욕심이겠죠?
아홉 번째 씨앗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 피드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날카롭고 객관적인 피드백일수록 감사하고 또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받는 피드백들이 대부분은 평가의 논조를 띄고 있어서긴 하겠지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건 그런 방식의 관심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디자인에 의지도 뜻도 없이 관성적으로 과제를 해 가던 시절 제가 대충 넘긴 부분들을 정확히 짚어서 절 부끄럽게 만들어 주시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힘들면서도 이상하게 엄청 즐거웠어요. 너무 그렇게 생각해오다 보니 이제는 칭찬이 어색하고 낯설어졌는데, 좋은 칭찬은 또 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두 번째 씨앗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가는 길을 설명해주세요.
집 앞 풀숲을 좋아하는데요, 공동현관에서 나와서 벤치까지 쭉 걸어가다 보면 반대편 단지와 울타리 사이에 작은 공터 같은 공간이 있어요. 머리가 복잡하던 시절에 새벽에 나와서 산책하다가 담배 피우고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힘들 때 찾갔던 기억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질문을 보고 생각나는 건 그곳입니다.
네 번째 씨앗
창작에 대한 원동력과 가장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아직은 초조함입니다. 그래서 심적 여유 상태에 들어가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최근에 들어서는 이 초조함과 압박감을 즐기고 스스로를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여섯 번째 씨앗
창작에 있어 개인적인 소재나 경험, 감정들을 대하는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제 감정이나 경험을 어떤 대상으로 삼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작업들을 보거나 읽는 건 너무 좋아하는데, 그런 작업들에 비해서 스스로의 감정이 그렇게 진지한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에세이를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었는데,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기피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여덟 번째 씨앗
책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 혼자 만들 자신은 없지만, 그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고 싶어요. 단순하게 그 물성이 좋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페이지가 묶여 있는 과정이나, 어떤 '맥락'과 '이야기'가, 생생한 '감정' 만질 수 있는 형태로 굳어져 나왔다는 게 신기해서요.
열 번째 씨앗
앞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내는, 괜찮은/쓸 만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자라고 있어요. 웹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엄청난 가능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웹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 것인데요, 이런 애정이 자란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떻게 책도 웹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고 있습니다.